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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송재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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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隸書(예서)


隸書(예서)라는 것은 小篆(소전)을 더욱 간략화한 것인데 小篆(소전)과 같이 국가에서 제정한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自然發生的(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서체이다. 古來(고래)의 전설에 의하면 秦時代(진시대) 程邈(정막)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程邈(정막)이 徒隸(도예) 출신이라 하여 隸書(예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隸(예)는 罪人(죄인)인 徒隸(도예)나 奴隸(노예)라는 뜻보다는 일반적으로 民間(민간)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小篆(소전)이 국가에서 제정한 正字體(정자체)인 반면 隸書(예서)는 일반민간에서 쓰여 진 簡略字體(간략자체)였기 때문에 이것을 낮추어 徒隸書(도예서)로 불렸던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예서가 일상적 실용자체로 널리 일반에게 통용하게 되어 한대에 와서는 小篆(소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隸書(예서)는 古隸(고예)와 八分隸(팔분예)로 분류된다. 1907년 영국 탐험가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이 甘肅省敦煌縣(감소성돈황현) 북방에서 發掘(발굴)한 漢代遺蹟(한대유적)인 天漢五年(천한오년 BC98)의 木簡(목간)을 隸書(예서) 시대 진입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肅 : 엄숙할 숙. 嚴肅(엄숙). 고요할 숙. 靜肅(정숙). 공경할 소.
漢代(한대)의 元康(원강 BC65~62), 神爵(신작 BC61~58), 五鳳(오봉 BC57~54) 시대의 목간은 隸書體(예서체)인데 波磔(파책)이라고 하는 橫劃(횡획)의 수필을 八字(팔자)처럼 뽑아 뻗은 기법을 썼다. 波磔(파책)의 기법을 사용하여 쓴 左右均齊(좌우균제)의 서체를 예서에서도 특별히 구별하여 八分書體(팔분서체)라고 하고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波磔(파책)이 없는 예서를 古隸(고예)라고 한다. 종래의 說(설)에 의하면 八分書(팔분서)는 古隸(고예)가 물러감에 따라 나타났다고 보았는데 敦煌簡(돈황간)이 발굴되면서 八分書(팔분서)와 古隸(고예)는 같은 시기에 倂用(병용)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磔 : 찢을 책. 서체에서 파임 책.
後漢(후한) 初(초)中期(중기)의 書(서)로 전해지는 것은 石刻文字(석각문자)인데 대부분 古隸(고 예)로 되어있다. 석각문자에는 刻石(각석), 石闕(석궐), 磨崖(마애)의 세 종류로 분류된다. 碑(비)는 龜趺(귀부)라고 하여 거북이 모양을 한 臺石(대석)에 세우는 등 일정한 형식이 있어야 되는데 그러한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을 刻石(각석)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後漢(후한)부터 육조시대에 걸쳐 廟(묘) 또는 墓(묘)앞에 좌우로 한 짝의 石柱(석주)를 세우는 것이 流行(유행)이었는데 그 석주를 石闕(석궐)이라고 한다. 廟(묘) 또는 墓(묘)에 가려면 이 석궐 사이를 지나야 하는데 지나는 길을 神道(신도)라 하여 석궐을 神道闕(신도궐)이라고 불렀다. 天然(천연)의 岩壁(암벽)에 직접 문자를 새기는 것을 摩崖磨崖(마애)라고 한다. 摩崖磨崖(마애)란 암벽을 고르게 닦는다고 풀이되는데 이러한 문자를 磨崖文字(마애문자)라고 한다. 이러한 마애는 後漢(후한)시대부터 시작되었다.
後漢末(후한말) 桓帝(환제 146~167), 靈帝(영제 168~189)에 접어들어 정치는 극도로 紊亂(문란)하였으나 石碑(석비)의 유행과 종이의 발명으로 書藝術(서예술)은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後漢末(후한말) 유명한 석비로는 禮器碑(예기비), 乙瑛碑(을영비), 史晨碑(사신비), 曹全碑(조전비), 張遷碑(장천비), 西陜頌(서협송), 石門頌(석문송) 등이 있는데, 文字(문자)의 형태가 整頓(정돈)되고 典雅(전아), 洗鍊(세련), 調和(조화), 成熟(성숙)의 形式美(형식미)를 발휘하는 八分隸書(팔분예서)이다.
후한의 석비들의 서체는 중국서예사상 精華(정화)로서 자리한다. 그러나 석비의 유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최후의 憲帝時代(헌제시대)인 建安十年(건안십년 206)에 故人(고인)의 儀禮的(의례적)인 葬禮傾向(장례경향)이 繁縟(번욕)에 치우쳐 천하가 疲弊(피폐)한다는 이유로 石室(석실), 石獸(석수), 碑銘(비명) 등의 제작을 一切(일체) 禁止(금지)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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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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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書(초서) [11]

노송재주인  


篆書(전서) [3]

노송재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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